동네사람도 대학도서관에 가고싶다 그래서 오늘-

 대학 도서관이 갑자기 이렇게 참 치사해 보일수가 없다. 학교를 다닐때야 이미 쏟아지는 과제와 수업준비로 도서관을 천천히 돌아보며 책을 읽는다거나 하기 어려웠고, 그래서 한학기에 한두번이나 갔을까. 다만 방학을 하고나면 타대학 열람의뢰서를 가지고 세종대 도서관에 종종 갔었다. 아무리 작아도 대학은 대학이고, 거의 필요한 모든 학술자료나 책들이 있었다. 집도 가깝고 대학 안이라서 책보다 배고프면 식당가서 밥도 먹을 수 있고 경치도 좋고 낙원이 따로 없다. 만.

 졸업을 하고나니 그렇게 학생증 바코드를 콕콕 찍어대는 도서관이 얄밉다. 광진구에는 달랑 두개의 도서관이 있는데 광진정보도서관(구립도서관)은 광나루역에서 내려서 신촌역에서 거의 본관으로 들어가는만큼의 거리를 걸어가야하고(그것도 언덕으로) 그렇게 헥헥거리고 들어가도 생각보다 책이 별로 없다는 점과, 뭔가 속이 출출해진다해도 사먹을 수 있는 것들이 없다는 훌륭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새로 생긴 중곡동 문화센터 옆의 도서관은 어린이 도서관이다ㅠㅠ. 바로 걸어서 몇걸음만 가면 세종대, 쫌 더가면 건국대에다 버스 한번타고 10분이면 한양대인데.

 어짜피 도서관 안에 그대로 박혀있는 책이라면 한명이라도 더 읽는게 좋은거 아닌가, 대출은 불가능으로 해놓고 시험기간 출입금지 뭐 이런거 해놓으면 안되나? 왜 대학생'만' 책을 읽어야하는지는 알 수 없다. 고급정보는 한학기에 400만원씩 낸 사람들만 영수증 가지고 들어가서 보라는건 어느 못된 심본가. 책 좀 본다고 닳아없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고까우면 어느 도서관처럼 월 회비를 받던가. 이미 있는 건물과 이미 사둔 책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별로 보지도 않는 고리타분한 책들을 보고은데, 귀 대학의 학생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썼으나 그들은 이해해줄까.

 세종대 도서관에 지역 주민이니까 책좀 보게 해달라고 메일을 보냈다. 답변이 어떻게 올지 모르겠다만, 어짜피 지어진 도서관과 이미 훌륭하게 모아놓은 장서들을 이왕이면 좀더 많은 사람들이 보게 했으면 좋겠다. 고시공부와 토익공부하는 사람들과 일반 도서 열람자들이 같지 않다는걸 알텐데, 어짜피 대학에서도 도서관에 정말 책보러 가는 사람은 적지 않은가. 일반 열람실이 미어터지는거지 학교다닐때 평소 학술서적쪽이 붐비는건 단 한번도 볼 수가 없었다.
어쨌든, 교육과학기술부에서도 지역주민에게 책을 좀 보여주라고 '권고'하더라 하는 말도 메일에 덧붙이면서...
별도의 뭔가 들어갈 수 있는 출입증을 만들어주실까? 제발 흐엉엉엉, 다 사보면 돈이 얼만데 ㅠㅠ 그리고 잦은 절판!

(그리고 내가 가지고있던 여성학 관련 잡지랑 책들을 세종대 여위에도 다 기증하고 졸업했는데, 이정도면 정말 착한 지역주민 아닌가. 나와 그들의 연결고리란 정말 한동네 살고있다는것 밖에 없는데!)

참, 요즘 알바구하느라고 알아보던 중에
대학 취업센터의 '알바구인'란도 전부 학번이 있어야만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우리학교는 알바게시판이 모두 공개이니 그점은 참 착한것 같다. 무슨 알바정보도 독점이라니...(알바몬에는 없는 것들이 대학에는 많으므로!)

뾰족이들 가운데 도움의 손길 호주워킹일기

농장으로 출발한지 둘째날


2008년 8월 11일

아침에 보험회사에 전화한다고 난리를 피웠다. 우리나라같으면 전화를 받자마자 우리에게 달려왔을텐데, 어제 저녁 내내 전화를 했더니만 영어 못알아듣겠다고 확 끊어버리지를않나. 능숙한것이 꼭 말을 줄줄줄 해야하는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조금만 귀기울여주면 우리가 사고났으니 도움이 필요하다는것쯤은 그쪽에서도 알 수 있을텐데, 그리고 나도 그정도는 이야기할 수 있는데. 자신감은 항상 오르락내리락이다. 그리고 여기 오고 두 번째로(첫번째는 알바구할 때) 아 영어 잘하고싶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집에서 살면서는 이정도면 잘하지 하면서 살았으니까. 어쨌든 차를 한쪽에 주차해두고 피자를 시켜먹고 한숨 푹 잤다. 꽤나 긴장했었나보다.

 아마 어제 저녁은, 밤이 어두워지자 마음이 급했었나보다. 모텔 표지판만 보고 좌회전을 했는데 그만 일방통행로가 아닌가, 언니가 당황했는지 급하게 핸들을 꺾었는데 모텔의 편지오는 편지통과 길가의 표지판을 들이받았다. 응앙응앙. 일단 놀란마음 진정시키고 잠을 자기로 했었다. 어찌되었던 현명한 선택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보험회사의 불친절함을 극복하고자 1박2일도 봤고 이미지게임도 하고 잘 놀다가 잤다.

 어제 내내 아무리 이리 전화하고 저리 전화해도 연결이 안되어 다음날 아침에 은행으로 쫓아가보자 했는데 마침 그날 아침 모텔 앞에 한 아저씨가 앉아계셨다. 사실 아저씨 어제 오다가 저기 우편함 들이받았어요 하는데 아저씨가 차를 이리저리 보아주신다. 내친김에 보험회사에 전화하는것까지 부탁을 드렸다-염치불구하고. 한국에선 보험회사에 전화하면 우선 사람부터 보내주거나 제까닥 처리가 되는것에 비해서 여기는 이리저리 복잡하다. 전화를 한참하다 다른곳으로 돌려주고, (그 사이도 엄청 길고) 뭐 약물복용인지 보험에서 거부된사람 있는지 범죄경력있는지가지 물어본다. 거의, 전화한지 네시간이 지나서 겨우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보험회사에서 지정해준 카센터까지 갔다. 시간이 자꾸 지나고 해는 뜨거워지고 아저씨도 바쁘실텐데 마음이 콩닥콩닥거린다. 아저씨가, 음음 그럼 운전미숙으로 하지 말고 어제밤에 안개가 너무 많아서 시야를 가렸다고 하자구~ 하시면서 우리를 위해 정말 귀에서 화석나올만큼 긴 시간을 성실하게 도와주셨다. 염치 불구한 큰 도움을 받는건 내 인생에서 그리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다른사람의 온전한 네다섯시간 아니 반나절 이상의 도움같은 것들은. 인과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시드니에서 일하면서 다른사람들한테 텃세 안부리고 새로 온 사람들 잘 챙겨줘서 하나님이 복주시는 것이라고 살짝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도와주시는 아저씨도 영어를 하시니, 우리 넷이 눈을 똥 그랗게 뜨고 아저씨를 쳐다본다. 넷이 각자 이해하고 합쳐서 알아들어간다. 넷이 일인분이다.

 보험회사가 수리카센터를 지정해주었다. 카센터에서는 고치는데 한 2~3주정도 걸릴테지만(커플오브~라는 말이 이제 제일 싫어질것 같다. 커플 오브 윅스라니!) 얼마가 걸릴지 확신은 못한다 한다. 그 시간동안 여기 머물 돈은 없으니 어쨌든 농장쪽으로 이동해야하는건 맞는것같은데. 보험회사에서는 차 사고가 나면 수리하는 기간에 렌트카를 무상으로 (2주만!) 빌려준다. 우리의 차종과 비슷한것을 준다고 브로셔에는 서있지만 막상 온 차를 보니 이건 뭐 도요타 중형차다. 타는 우리야 좋지만, 갑자기 큰차가 와서 운전에 당황한 언니가 얼굴이 굳어있다. 빌린 차를 끌고 농장까지 일단 가서 일자리를 잡아두어야할텐데, 괜히 이 좋은차 어디 긁히기라도 하면 하는 걱정이 된다. 으아 정말, 이건 다음에 사고나도 도움요청도 못하겠다. 뭐 이리 복잡한지.

 어쨌든, 차가 고쳐지면 다시 2~3주 있다가 차가지러 여기 타리(차 사고난 지역. 동네 이름은 예뻐)까지 차를 끌고 와서 렌트카를 반납해야한다. 그안에 농장의 일자리가 확실히 찾아지고 사고없이 목적지까지 가면 좋으련만. 아참, 편지통이랑 표지판도 들이받았는데 그것도 보험처리해야하는데 건 또 어느세월에 해줄지 모르겠다. 흐윽.

 타국이, 왜 이렇게 많은 부분에서 내 가슴을 철렁거리게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비행기를 타고 다른나라로 간다는건, 우리나라로 오세요 하는 무슨 광고를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이렇게 당황스러운 것은 아니라고 다들 그랬었는데. 내가 여행자가 아니라서 그런가. 돈을 가지고 그나라에 소비하러 가는것과 그나라에 정말 '살'러 가는건 참 다르구나 한다. 이렇게 모든 부분에서, 내가 책임져야 하는 부분도 그래서 자국인이 아니라 배타적인 부분도 많구나. 굳이 그들이 배타적이지 않더라도 이미 만들어진 모든 거리도 제도도 나와 익숙하지 않으니 그게 내가 여기서 살아갈때는 모든것이 무기로 다가온다. 모르는 것은 두렵다.

 이 뾰족무기들 가운데, 이렇게 온전히 하루를 다 타인에게 내어줄 수 있는 로드 아저씨같은 사람이라도 없다면 이 땅에서 어떻게 사람들이 살 수 있을까. 로드 아저씨의 도움은, 아무리 봐도 하나님이 주신게 틀림없다. 나는 유진언니에게 앞으로 착한일 하며 살겠다고 얘기했다. 좀 유치한 얘기였지만 언니는 비교적 진지하게 들어주는 편이다. 영희는 귀여운 생각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난 진지했다네.

덧.

혹시 호주가서 보험을 들고싶은 분이 계시거든 (초보운전이면 드는게 좋다고 생각해요. 핸들방향도 운전방향도 다르니 실수하기 쉬워요. 한번 사고나면 정말 엄청난 돈이 들어가거든요. 호주 물가 비싸잖아요) Commonwealth Bank 들지마세요!!! 불친절하고 접수도 잘 안해주고!

 대도시에는 ANZ이 많이있지만 시골에는 별로 없으니 이것도 비추, 전화보다는 우리같은 외국인은 직접 쫓아가서 도움받을 수 있는 지점이 많은 보험사가 좋아요. (그런면에서 commonwealth가 나쁘지만은 않지만) NRMA보험 하세요- 그것도 시골에 지점 많더라구요. 그리고 고속도로나 국도위에 정말 아무것도 없으니까 견인보험도 꼭 드세요

 그리고 보험처리를 한다해도 접수및 처리비는 일부 본인이 부담해야해요. 치사 똥 빤스 라고해도 그거 안내면 차 안주니까, 그저 사고 안내는게 장땡이지요.


전기방석이 도착했다 그래서 오늘-

오늘 전기방석이 도착했다. 히야야. 호주에서 그렇게 가지고싶었던 전기방석, 책상에 코박고 시간보내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긴 겨울을 날 수 있게 해주는건 전기방석뿐. 거기에 부탄가스 난로 하나면 영하 30도도 두렵지가 않았다. 그러나, 작년 게다가 한파가 시작되기도 전인 12월경에 사무실에 방석을 들고가다가 세상에 지하철에서 놓고내린것이 아닌가. 학교도 아직 다니고있던 때라서 사무실에서도 쓰고 학교에도 가져가고 그랬는데, 웬수같은 잠이 와서 그만 후다닥 내리느라 방석을 차 선반위에 놓고내렸었다. 그날은 사무실 대청소날이었는데 나는 청소도 안하고 지하철에 전화를 하느라 오두방정을 떨었었다. 물론, 못찾았다만.

월요일에 우악 추워서 전기방석을 냉큼 주문했다. 집에 처음 온 날이던가, 정말정말 읽고싶은 책이 있어서 주문을 해놓고(금요일 밤에) 금요일에 주문했으니 월요일쯤 도착하겠지 하고 여유있게 생각을 하고 토요일에 밖에 나돌아다니다가 토요일 오전에 책이 도착해버린 일이 있었다. 택배기사님이 친절하시게도 (별로 안친한) 앞집에 책을 맡겨두셨고 마침 앞집에 놀러오신 옆동네사는 앞집네 할머니는 애들이 뜯어본다며 그걸 집안 어딘가에 꼭꼭 숨겨두시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셨다. 앞집할머니는 그 이후 1박 2일동안 핸드폰을 집에 두시고 마실을 나가셨으며, 1박 2일 이후에는 나의 끊임없는 전화에 아들네 집으로 돌아와 택배를 어디다 두었는지 찾으려고 노력하셨지만 어디다 두셨는지 까먹으셨다. 결과적으로 주문한지 3일째되는 날 책을 받긴 했다.

 요지는, 어쨌든 우리나라는 정말 빠르다. 놀랐다.

 그래서 이번에도 월요일에 전기방석을 주문했으니 화요일에 올꺼야 하고 생각했지만, 화요일이 지나고 수요일이 지나고 목요일도 해가 딸어져도 오지 않았다. 귀국 즉시 호주식의 기다림따위는 까먹어버렸기에 왜 안와! 하고 짜증을 내고 싸이트에 불만을 올리려는 바로 그 순간 7시경에 택배가 왔다. 억.

엄마가 그래서, 함부로 남 흉보는거 아니라고 하셨다.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고.
그나저나 이거 뜨뜻하니 좋아 죽겠다.

학원에 취직했다. 시험기간에만 국어를 가르치기로 했다. 일주일에 달랑 한번.
1등급으로 만들어주겠어!
아니 학원강사도 시급 6000~7000원주는데 너무한거 아닌가 싶다. 물론 나는 만원 넘게 받는다 으힝힝 그래도 과외시급의 절반이다 으악악. 

농장 출발 첫날, 차가 뺨을 맞았다 호주워킹일기

정리해서 다시쓰는 호주일기

8월 11일 경에 시드니에서 농장으로 떠났다. 그날부터 쓰기는 했지만 다시 읽어보니 군데군데 빠진데가 많다. 역시 일기를 안써놓으니 그전에 일이 하나도 기억이 안나네. 방영희양과 달리 나는 일기를 잦은 횟수로 빼먹기 때문이다. 기억이 안나는건 어쩔 수 없지.

 당시의 우리들은 유진언니 영희 태원이 그리고 나 네명. 시드니에서 약 3개월 절반정도 지내고 농장으로 출발한 첫날이다.

2009년 8월 11일 화요일

첫째 날, 시드니에서 타리. 에이진카운터 모텔까지 왔다. 중간에 작은사고 한개 큰 사고도 한개 모두무사!

급작스러운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겠다. 혼자라면 울었을까 아니면, 집에 가고싶다고 글씨를 끄적거렸을까 아니면, 노래 틀어놓고 청승을 떨었을까. 세 개를 다했을듯. 길가에서 쭈그리고 그랬으면 아주 해외토픽에 나왔겠다.

 아 이제 쉬자 하는 숙소 앞에 와서 푸억 하고 우체통을 들이받았다. 당황하면 이상하게 엑셀이 사람 발을 잡아당긴다. 못된녀석. 오마나 하는 동시에 우체통을 쓰러뜨리고 차는 멈췄다. 왼쪽 볼따기를 한 대 푹 얻어맞은것처럼 찌그러진 우리 차. 숙소 아주머니가 나오셔서 어머 여기 사고났나봐 하고 옆집아줌마까지 불러 구경하시고, 그와중에 영희가 좋아하는 사과주스를 주셨다. 사고가 신기한긴 한가봐, 와서 어머머머 하고 가신다. 다먹고싶은데 괜히 민망해서 한컵만 먹은 사과주스를 덜렁덜렁 든 채로 워셔액은 줄줄 새고있었다.-그땐 그게 워셔액인줄 알았다- 차가 콧물흘리는거같이. 혹 이거 엔진오일인가 해서 만져보니 그래도 물이다. 사실 만질때 좀 떨렸다. 엔진오일이면 콧물이 아니고 코피니까. 피나면 안되지

 한사람이 제 힘으로 서있는 딱 그만큼을 또 옆에 기대고 있다. 서로 기대고 기대서 서있으니 그렇게 굴러가는 자동차도 참 신기한 녀석이다. 덜덜거리며 면허딴지 달랑 하루만에 호주로 온 나와, 우리가 그리고 차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가 중고차를 사고 시드니에서 반나절을 달려 외딴 곳까지 왔다. 옆에 히터도 팡팡 틀어놓고. 큰건 아니라도 차사고도 두 번 날뻔 하고 그래도 살아있다. 허 참.

 차에 대해서 항상 ‘기계덩어리’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막상 차를 사고 그녀석을 데리고 움직이다보니 언덕을 올라갈때마다 힘내 힘내하면서 속으로 응원을 하게된다. 부서져서 물이 흘러나오는데 속이 얼마나 상한지, 우리 넷에 우리 짐까지 싣고 이 작은 녀석이 오기에는 힘들었겠다 싶다. 쉬어주면서 가고싶은데 갈길도 주머니사정도 바쁜 주인의 마음을 알는지. 내힘이 아니라 제힘으로 굴러가는 무언가를 타니 미안하다. 부서진것도, 밖에 비맞고 서있는것도.

  제주도에서, 언덕길을 내려오다가 타이어가 옴팡팡 구멍이 난적이 있었다. 후배 자전거였는데 안에 철사가 들어가서 떼구르르 굴렀었다. 한군데 때우니 다시 한군데에서 바람이 푸슈슈슈 그래서 다시 때우니 다른곳에서 푸슈슈슈. 결국은 트럭에 실려서 자전거고치는데에 가서 그때 아마 만원이었나? 타이어 때우고 가는데, 에구구구 그 바람빠지는 타이어를 보는 참담한 심정이란.

    본네트를 열었는데 소리도 푸슈슈슈 범퍼도 푸슈슈슈, 내가 뭘 해줄 수 없을때 푸슉거리니까 아이고 미안해라. 그리고 사실은, 이거 또 얼마나 나올껴. 보험회사는 영어가 안되서 고생인데 렉카도 안오고. 

일단 일박이일 보고 자야겠다. 기분전환! 이럴때 버라이어티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민족 섹슈얼리티 병리학 가끔 공부

 재미있는 책을 좀 봐 라고 몇명의 사람들이 충고해주었지만 나는 정말 이런 류의 책들도 재밌다. 물론, 다들 재밌어하는 책들도 재밌지만. 일단 집에 있는 것들을 다 읽고 그뒤에 읽은 책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거나 읽고싶은 사람들에게 주어서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얇은책부터 시작했다.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 -민족, 섹슈얼리티, 병리학]

 고미숙씨가 쓴 글인데, 공교롭게도 그분의 고향이 내가 어릴적에 종종 놀러가던 강원도 정선군에 있는 함백이었다. 어려서 춘천으로 유학을 가셨지만 엄마는 함백에서 고등학교까지 나오셔서 덕분에 나도 엄마의 고향에 대한 옛날 사진들이나 그리고 한 10년전까지의 모습은 그대로 기억이 난다. 정말이지, 몇십년 전 사진이었는데 학생들이 그렇게 바글바글대던 학교와 거리 행진만 하면 꽉꽉 차던 도로사진을 앨범에서 봤을땐 히야 신기하다 싶었다. 여전히 그 학교들의 규모는 엄청난데 전교생이 두자리수에 50명 미만으로 알고있다.  운동장이 너무 넓어서 뛰다 뛰다 에라이 하고 주저앉기를 자주했다. 그땐 내 다리도 짧았으니까. 엄마는 내가 '운동장이 컸어' 라거나 '병원이 무섭게 생겼어' 라고 얘기할 때 주로 '아 그랬어?'라고 하셨지 굳이 그것들이 그렇게 생겼다고 생각을 하지는 않으셨다. 마찬가지로 나도, 서울은 바글바글해 라고 처음으로 느낀건, 호주에서 돌아오고 나서였으니까. 내가 나를 '진아야'라고 안부르는것처럼.

 다시 이야기를 돌려보면, 지금은 익숙한 깨끗히 씻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나라에 기둥이되는 사람이 어떻게 생겨났는가에 대한 얘기책인데, 여기에 제시된 사설들이 대부분 4음보로 되어있어서 국어책에 나왔던 '노래하듯이' 읽으면 재미있다. 그리고 나는 '똥'얘기를 하면 자주 웃어서(역시 호주에서 알게되었다) 지하철에서 대한매일신보나 독립신문의 '똥'편을 소리내어 읽으면서 큭큭거렸다. 옛날얘기는 뭐든 꼭 홍시같다. 달고 시원한게. 짚어줘야 알게되는 내 '섭섭한' 모습 보는 양으로 읽었다. 졸업하기 전까진 내가 똑똑한줄 알았다니까. 아우 섭섭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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